어느 하늘 높고 맑은 가을날 만하탄 5가 박물관 거리(Museum row)의 한 카페에서 한국에서 온 옛 친구와 차를 마신 후 헤어져 걸어 나오다가 갑자기 넘어졌습니다. 발에 걸리는 것도 없었 고 어지럽지도 않았습니다. 곧 일어나 걸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주치의가 만약을 위해 세명의 각각 다른 분야의 전문의에게 보내 정밀검사를 받게 했습니다. 모두 가 검서 결과가 정상이라 하였습니다. 주치의는 아무 이유도 없이 넘어졌다는 것이 이상하다 하면서 앞으로 지팡이를 갖고 다니는 것이 어떠냐 하였습니다. 문제없이 걸울 수가 있는데 어이 가 없었습니다.
지팡이라는 말이 나오자 내 머리에는 옛날 어렸을 때 부르던 꼬부랑 할머니 노래가 떠 올랐습니다. 우울한 심정으로 돌아와 머뭇거리다가 두 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두 딸은 “엄마 의사 말 대로 해요. 혹시라도 넘어지면 큰일 나요. 오늘 당장 지팡이 사드릴 게요.” 했습니다. 의사인 동생에게 전화를 했 더니 “누이, 애들 말 대로 하세요. 누 이 나이에 혹시 골절이라도 되면 회복 이 어려워요.” 가족들의 협박이 이어졌습니다.
심난한 마음으로 드러그 스토어에 가보니 지팡이가 잔뜩 걸려 있었습니다. 드러그 스토어에 지팡이가 있는 줄도 전에는 몰랐습니다. 마침내 마음을 다잡고 지팡이를 들고 외출하는 첫날에는 자존심 상하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나가보고 깜작 놀랐습니다. 길에 지팡이를 짚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습니 다. 전에는 전혀 눈 여겨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팡이를 짚은 사람들은 길에서 눈이 마주치면 서로 미소로 눈인사를 하고 간단하게 이야기도 나눕니다.
만하탄에 살고 있으니 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지하철은 오르내리기 싫어 버스로 가고 싶은 곳을 다 다닙니다.
차츰 익숙해지면서 지팡이를 갖고 다니는 것에는 유리한 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줄을 서면 비켜주는 사람도 있고 버스에서 자리를 내어 주기도 합니다. 저는 지팡이를 들고 있을 뿐 걸을 수 있기 때문에 속으로는 많이 미안했습니다.
버스에는 노인과 장애인에게 양보하라는 표말이 있는 좌석이 있는데 다 른 좌석이 비어 있으면 그곳에 앉지 않고 일반 좌석에 앉습니다. 나는 혼자 걸을 수 있으니 장애인은 아닌데 지팡이를 들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에 게는 장애인으로 보이겠구나 하는 생 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좀 난처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로서리에 들어가 쇼핑한 후 지팡이를 그냥 둔 채 물건만 들고 나왔 습니다. 판매원이 내 지팡이를 들고 급하게 뛰어나와 주었습니다. 나는 잠깐 발을 멈추었습니다. 장애인도 아니면서 지팡이를 짚고 들어와 보기 좋게 걸어 나가는 내가 거짓말쟁이 이 든지 아니면 깜빡 잊어버리기 잘하는 노인이라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요즈음 지팡이는 반으로 또는 세 부분으로 접을 수 있어서 가방에 넣고 다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존이나 박물관 기념품 점에서도 현란한 색상의 디자인을 넣은 지팡이들을 팔 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하듯 길 건너에 있는 도서관과 수많은 문화시설들에 갈 수 있고, 요즈음처럼 화창한 봄날에는 지팡이를 짚던, 가방에 넣어가던 그리 멀지 않은 센트럴파크에 내 발로 가서 꽃, 나무, 넓은 풀밭, 호수를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큰 행운이 라고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