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성경에 등장하는 여 선지자인 드보라를 착안하여 할머니의 성함을 도라로 지을 만큼 기독교 신앙이 깊이 자리잡은 가정에서 태어났다. 할머니의 아버지가 인천 내리교회 강도사로 활동하였고 신문물을 일찍부터 접하게 되었다. 할아버지 집안도 기독교 신앙이 돈독한 환경이었다. 7살 때 6.25를 겪게 되었는데 피난을 미처 하지 못하여 서울에서 인민군들이 활동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며 어린 나이에 전쟁에 비참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경기중학교 입학시험은 뒤로 하고 수월하게 무시험으로 합격이 보장된 용산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어린시절의 나는 신앙생활이 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였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낙후된 농촌개발을 위하여 헌신하겠다는 포부를 품었다. 그 꿈을 펼치기 위한 첫번째 관문으로 대학교 진학을 서울대 농대를 지원하려 했으나 한국기계공업 육성의 원대한 대의 명분을 내세우며 공대 입학을 꿈꿨지만 낙방하는 고배를 마셨다. 이를 계기로 나의 적성을 고려하여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전공을 깊이 고민하며 서울 상대에 도전하여 입학하게 되었다.
청년 및 중년 한국생활
1967년 대학교 4학년 여름에 OB맥주 입사가 결정되어 1968년 1월부터 일을 시작하였다. 두산그룹 기획실에서 근무하며 감사팀장으로 그룹내 회사들을 감사하였다. 특히 건설회사를 감사하면서 토목/건설회사의 복마전 같은 재무관리를 눈으로 보게 되어 직접 경리부장으로 건설회사에 근무하였고 뒤이어 사우디 지점을 개설하는 업무를 맡아 사우디에서 근무하던 중 미국이민을 위하여 사표를 제출하였다. 본사에서 사표 수리를 하지 않고 나를 설득하여 본사에서 한 달을 쉬고 코카콜라에서 1년을 더 근무하였으나 나의 미국이민에 대한 의지는 회사의 끈질긴 설득에도 꺾이지 않아 사표를 내고 이민 왔다. 이민 이후에도 회사 복귀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가족들이 미국에서 정착하려는 강한 의지를 설득하기 어려워 한국행을 결국 포기하였다.
미국이민생활
대학 졸업 후 주변 친구들이 유학 준비를 많이 할 때에도 ‘유학은 안 간다 ‘ ‘외국에 나갈 것이 아니라 조국에서 살아야 한다’는 완고한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직장 생활과 신앙 생활의 괴리에서 오는 불편함과 미국연수 및 해외 출장 등을 통한 경험, 인생 후반의 삶을 어떻게 사는 게 올바른가에 대한 성찰로 마침 형제초청 케이스가 풀려 가족 이민을 결정하여 1983년 4월 뉴저지로 정착하게 되었다. 대학원 입학의 권유도 많았으나, 세 딸을 가진 아빠로서 제대로 삶을 꾸리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에서 ‘카드 앤 기프트’ , ‘델리 스토어’를 맨하탄에서 운영하다가 아이들 돌봄을, 뉴저지에서 세탁소 사업을 시작하여 30년 이상 하다가 2016년말 은퇴를 하였다. 은퇴 이후 여유로운 시간을 활용하여 자유인으으로 마음껏 여행을 즐기고 있다. 미국 대륙 횡단여행/ 일주여행을 6번 하였고 3대양 6대주 50여개국으로 배낭여행을 즐겼다. 지금도 일년에 한 번은 석 달 정도의 해외 배낭여행, 한 차례 대륙횡단 차박 캠핑 등의 방법으로 자연을 벗삼아 타지에 탐험하기를 즐기고 있다.
신앙생활 및 선교적 사역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고 한국에서 36살의 젊은 나이에 장로 직분을 받았다. 이민 후 처음에는 뉴욕에서 교회를 출석하다가 뉴저지로 이사온 후에는 두 번의 교회 개척에 힘을 보태었고 그 중 하나인 찬양교회는 목사님 가족, 처제 가족과 함께 시작하여 아직도 출석하여 36년이 되었다.
미국에 이민해서 처음에는 청년사역에 뜻을 품고 시작하였다. 그러나 청년기를 미국에서 보내지 않았고 현지인 만큼의 영어가 되지 못하여 청소년들을 위하여 도움을 주는데 한계가 있음을 느껴 방향을 시니어 사역으로 전환하였다. 시니어 사역 가운데 건강, 사회보장 혜택 등은 많은 봉사 기관들이 하고 있어 내가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삶의 질 향상이라는 새로운 주제로 자연스럽게 고민을 하던 중 자녀 교육이 끝난 55세부터 관련기관에서 봉사를 하면서 상담과 신학 공부를 준비했다. 공부를 마치고 헌신할 기관을 Family Touch로 정하여 20년 동안 “죽음 준비 학교”(8주 과정)을 개설하여 1천여명의 시니어 한인들의 은퇴 후 삶을 재조직하는 교육에 힘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