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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우 동문 (의대 69) 과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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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우 동문 (의대 69) 과의 대담 4/1/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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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필
(@keiusain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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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ined: 1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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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감미옥   참석자 – 홍종만, 김정필, 금영천

미국이민 – Mount Sini St. Lukes GME Pathology Residency (New York, NY), Parkland Memorial Hospital Fellowship, Surgical Pathology (Dallas, Tx), Hackensack Pathology Associates, Albert Einstein Medical School.

학창시절 – 재동국민학교 졸업 후 경기중고 졸업 중고 6년 동안 개근

재동국민학교에서 가까운 계동에서 살았습니다. 국민학교 6, 중학교 3, 고등학교 3년 모두 개근상을 받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침에, 머리에 열이 펄펄 나는데도 학교에 보내시고, 등교해서는 양호실에 가서 누워있더라도 학교에 갖습니다고등학교 재학시에는 때는 공과대학에 진학할 생각이었습니다. 그 당시 화공과 전자공학과, 기계과 등이 인기있는 학과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농촌진흥청, 농과대학 교수부장 등을 하셨는데, 역마살이 있으셔서 외국에 많은 여행을 하셨습니다. 아버님은 비참했던 전쟁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지난 불행한 전쟁 중에 법조계, 경찰관 군인 가족, 부유층 가족들도 큰 화를 당했지만, 의사는 존경받고 어떠한 재난에도 화를 면할 수 있으니, 의대에 진학하라고 권고하셨습니다.  아버님의 권유로 택한 의과 대학 선택을 후회한적이 없었고, 재학시절 모든 의대생들은 여학생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가 좋았습니다.

재학중 해부학 교수님이 사상의학적으로 저는 소음인이라고 하셨는데, 성격상 나서는 걸 싫어하고 조용히 사는 성격입니다. 졸업후에 군의관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이민 신청 후 비자 나오는데 3년이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내과 수련을 마치고, 아이 둘을 데리고 아무것도 모른 체 보스턴으로 왔어요. 트레이닝을 선택해야 하는데 뉴욕은 병리과, 관심이 많았던 Hematology-Oncology는 세인트루이스 병원이 가능했습니다. 뉴욕 St. Lukes GME Pathology Residency 트레이닝을 마치고, 달라스에서 followship, Albert Einstein에서 4년간 교수로 재직후, Hackensack 병원에서 현재까지 일하고 있어요.

안사람은 realtor로 일하고 있고, 아들은 위장내과 전문의, 딸은 소아암 전문의, 사위는 정형외과 전문의로 일하고 있습니다.

나는 5남매중 장남이고 나 혼자만 부모님의 뜻에 따라, 한국의 유교 전통에 따라 중매결혼을 하였습니다. 나는 장손으로, 유교의 예절과 관습을 지켜야 만하게 자라 낮습니다. 동생들은 모두 교회에 다녔지만 나는 예외였습니다.

아내는 외국어 대학을 나왔는데 과의 May Queen으로 키도 크고 미인으로 상당한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부유한 집안의 5남매의 막내로 성격이 좀 있고, 5남매중 장남인 나와 궁합이 잘 맞았습니다. 전문의 과정 어플리케이션 레터를 많이 보내야 했는데, 그때만 해도 컴퓨터가 없어, 많은 양의 타이프도 치고, 발송도 하는 등 고생을 많이 했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아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특기 또는 취미:

취미, 그게 나의 큰 약점입니다. 무엇이나 못하는 것은 없지만 특히 잘하는 것도 없습니다. 스님한테 취미가 뭐냐고 물어본다면, 아마도 세상 사는 것 그 자체가 취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이들 가르치기 위해 버겐 컴뮤니티 센터에 가서 체스를 배웠는데, 지금은 손자를 가르치기엔 생각이 잘 안나 어렵습니다. 현재 집에 8년 정도 살았는데 뒷마당을 맘 놓고 걸어본 적이 없어요. 벤치 테이블에 누워서 나무 흔들리는 것도 좀 봐와지라는 생각입니다.

사실은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전공을 여러 번 바꾸기 등, 많은 시간의 트레이닝과 현제 Hackensack의 일이 엄청나게 많아 취미 생활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불평 없이 일만 했던 것은 일은 할 수 있는 때가 있다.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을 때 그러니까 사오 십대에 뼈 부서져라 일했고, 60대 이후에는 경험이 생겨 일의 처지가 빨라 져서 젊은 사람들과 공존할 수 있습니다.

 

건강을 지키는 방법:

직업상 오래 앉아 같은 자세로 일을 한 결과로 척추에 무리가 와서, 아내가 다니는 교회의 요가 모임에 참석해서 요가도 하고, 산행에 지장이 없도록 트레이드밀도 열심히 합니다.

 

자녀들에게 주는 가훈:

집안에 선장은 하나다. 대부분의 일은 엄마가 결정하는 것이지만, 최종적인 결정은 아빠가 한다. 모든 책임은 아빠에게 있으니 엄마에게 순종하고 불평하지 말아라. 세상에서 가장 필요하고, 좋은 사람은 엄마이다. 엄마는 절대로 미워할 수 없는 존재이다.

 

생활의 신조:

열심히 해라. 이것이 맞는지 저것이 맞는지는 지금현재 알지 못한다. 하지만 오늘 이 순간을 열심이 살아라. 예를 들면 내일 비가 온다는 예보를 듣고 오늘 열심히 잡초를 뽑는 것 같이, 내일의 상황을 대비하여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

골든크럽에 참가하게 된 동기:

와이프가 산행을 좋아하는데, 골든크럽에 좋은 산행모임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골든크럽은 경험이 많은 선배 동문들께서 기초를 잘 닦아 놓아 잘 운영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입한지 얼마 되지 않아 기대하는 것은 아직 없고, 새회원으로서 잘 적응해 가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삶과 죽음에 관한 생각:

아버님은 협심증으로 전철역에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은퇴 후 어느 주말에 친구분들과 바둑을 두시고 점심식사후 속이 불편하시다고 해어져 전철역에서 쓰러지셨고, 주위사람들은 술 취한 노인 네로 오인하여, 응급조치를 받지 못해 돌아가신 것으로 생각됩니다아버님께서는 장남인 나에게 꼭 할말이 있으셨을 텐데, 아무 말씀 전하지 못하고 돌아 가셨습니다. 아버님 수첩에, 예를 들자면 김 선생 2만원, 강 박사 3만원 등의 수출입 금액이 적혀 있었습니다. 돈을 주어야 할 사람은 나타나는데, 돈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아 어머니께서 갚아 주시기만 하셨습니다. 나는 이러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습니다.     

나는 항상 삶과 죽음의 최선이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나는 나 자신을 못 보지만, 내가 꽃밭에 앉아 있으면 꽃을 보듯이, 내 주변의 모두가 행복하면 내 자신도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착하게 살 면은, 꿈도 착한 꿈을 꾸게 됩니다. 악한 것을 많이 보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악몽을 꾸며는 안 좋으니까요. 그렇게 살다 보면, 내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좋은 꿈을 계속 꾸고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가장 즐거운 순간들을 공유하며 살아 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Newsletter 2024-5에서 전재)


This topic was modified 3 months ago by 김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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