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는 어떻게 오시게 되었는지요?
1981년 대우중공업에서 주재원으로 미국에 파견되어 오게 되었습니다. 저희 회사에서 수치제어 공작기계 (CNC Machine Tools) 를 개발해서 미국시장에 진출하게 되었는데 그때 제가 개발 설계 책임자로 기술역을 담당하기 위하여 파견되었습니다.
- 공작기계라는 뜻이 무엇인가요?
공작기계(Machine Tools)는 기계를 만드는 기계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물건이 공작기계가 없으면 만들 수가 없습니다. 자동차, 비행기 등에 들어가는 엔진, 바퀴, 구동장치, 컴퓨터, 텔레비젼, iPhone 만드는데 필요한 Pattern 제작, 반도체를 만드는 기계, 총을 비롯한 각종 무기를 제작하는데 사용됩니다. 요즈음은 우리 인체에 고관절이 부러졌을 때 대체 Titanium Bone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등, 모든 분야에서 공작기계가 없으면 우리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을 생산할 수 없습니다.
- 그러면 공작기계 생산은 산업의 근간이 되겠네요?
예 그렇습니다. 모든 제품을 생산하려면 우선 공작기계를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공작기계 판매가 먼저 이루어 집니다. 예를 들면 자동차 생산 회사가 자동차 주문량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하면 공작기계를 구매하게 되고 기계를 공장에서 작동시켜 자동차 생산이 늘어나게 됩니다. 공작기계 판매 6개월 정도후에 경제가 좋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공작 기계 판매 추이가 경제 선행지수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공작기계는 어떻게 작동되나요?
공작기계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종류가 선반 밀링인데 이전에는 사람이 수동으로 작동시켰는데 1978년부터 Computer의 급속한 발전으로 공작기계에 컴퓨터를 장착하여 프로그램을 입력하여서 1/10000 inch까지 정밀한 제품을 빠르게 생산할 수 있게 되어 산업의 큰 발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 대한민국 기계산업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인데 시장 개척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사실 그때는 기술력도 많이 부족하고 저희가 만든 제품에 하자가 많아 잦은 고장 때문에 제가 설계 담당자로 고장난 부분을 고치러 미국에 출장 나왔다가 이 곳에 발목잡혀서 (^^웃음^^) 예기치 못하게 미국에 주재원으로 상주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소규모 공장 Job Shop (부품을 만들어 제품을 만드는 업체에 공급하는 회사) 위주로 판매했고, 고객 만족을 최우선으로 하여 영업을 했습니다. 고객 만족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기 때문에 고객 눈 높이에 맞추어 철저한 서비스를 제공해서 1980년대 10년간 우리 기계를 산 고객중 한 고객도 불만을 가지고 떠나지 않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Royal customer들을 기반으로 후발로 시작한 저희 회사가 1990년에 들어서 급속한 성장을 했고, 지금은 공작기계 회사 중 미국 시장에서 공작기계 판매에 15%를 점하는 Top 3안에 들어가는 굴지의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 미국 시장을 개척하셨는데 어려움도 많았겠지만 특별히 보람을 느꼈을 때는 언제인지요?
회사가 약 15년간 적자로 운영되었는데 대전환을 이루는 큰 계기가 있었습니다. 1998년 IMF사태가 있었습니다. 국내 경기가 어려워 판매는 엄두도 못냈는데 그 때 공장에서 생산된 기계를 거의 100% 수출하게 되었고 환율이 두 배가 되는 바람에 회사가 대박이 났습니다. 이전 모든 적자를 합한 것보다 더 큰 흑자를 기록헀고, 미국 공작기계 시장에서 Top3회사로 발돋음 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 제가 46년 한 회사에 근무하고 2년전 은퇴하였는데 회사 모든 직원들이 Legend로 인정해서 저를 위해 거대한 은퇴식을 해준 것에 감사드리고, 우리 회사가 어려울 때부터 함께 동고동락하며 성장한 북남미 모든 딜러들이 Cabo San Lucas, Mexico에 모여서 저의 Honorable Retirement Party를 열어준 것은 큰 보람으로 남아 있습니다.
- 지난 5월 어머니 고 김선실목사 기념교육관 건립이 있었는데요?
어머니는 목사님이신 외할아버지의 신앙을 본받아 1968년 목회자로 헌신하시고 선교의 열정을 가지고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담당하셨습니다. 매년 100명 이상을 전도하여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고, 은퇴하신 후에는 일본, 중국, 케냐 등을 순방하면서 해외 선교에 힘쓰시면서 많은 영혼 구원 사역을 하셨습니다.
어머님 장례식때 들어온 조의금을 종자돈으로 해서 이번에 뉴저지에 기념교육관 그리고 케냐 라무지역에 선교교회를 건립 헌당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라무지역은 이슬람 성지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고, 기독교인이 거의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소말리아 접경에 있어 해적들이 출몰하는 위험한 지역입니다. 하지만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 올해 초부터 사역이 시작되었는데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하심이 나타나고 복음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4남1녀인 다섯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극진히 섬기는 신앙을 몸소 보여주며 자녀들에게 든든한 신앙의 버팀목이 되어 주셨기에 우리 .모두들 믿음안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습니다. 제가 장남으로 성은장로교회를 41년간 섬기고 있고, 차남 이영훈 목사는 여의도 순복음교회 당회장으로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을 맡아 교계에 중요한 역활을 하고 있고, 삼남은 케냐에 나가있는 이영찬선교사, 그리고 사남은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 네덜란드ASML의 한국 지사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나요?
저의 부부 사이에는 아들과 며느리 각 3명 손자 손녀 7명이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 먼저 오고 1981년 11월 아내가 세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때 제가 시장개척에 너무 바빠서 제 처가 3살, 1살, 100일된 아들 셋을 혼자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도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이 때 어린 아이들을 혼자 데리고 오면서 일어났던 에피소드를 다 전하려면 드라마틱한 한 권의 단편 소설은 될 것 같습니다.
세 아들들은 매일 새벽마다 기도해주신 어머님의 기도 덕분에 잘 성장해서 Head Computer Programmer, CEO & President of NJ Charter association, Hedge Funds Partner로 일하고 있고, 우리집에 놀러 오기를 매우 즐거워 하는 예쁜 며느리들과 일곱 손자, 손녀들이 모두 뉴욕 뉴저지에 살고 있어 자주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 할아버님은 독립운동 유공자, 아버님은 유엔 용사로 국가에 공헌
저희 아버님께서 사업차 일본에 가셨는데 이 때 마침 6.25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일본에 계실 때 UN군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 입대하여 맥아더 장군과 함께 인천 상륙작전에 참여하였고 탱크로 진격하던 중 사격을 받아 다리에 부상을 입어 나라로부터 무공 훈장을 받았습니다. 부모님의 믿음을 본받아 여의도 순복음교회 장로로 봉직하시며 장로회 회장으로 헌신하셨습니다.
할아버님은 일찌기 미국 선교사에게 복음을 듣고 기독교인이 되셨고, 평양에서 서문밖교회 장로로 봉직하시고 독립운동을 하다가 3.1운동 만세사건으로 6개월동안 옥고를 치르셨으며 국가유공자로 추서되었습니다. 옥중에서 고문을 당하여 다리가 불편하신데도 노회의 요청에 따라 제주 4.3 사태로 인해 피폐화된 제주도에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남원교회 표선교회 등 여러 교회를 다시 복원시키고 제주도 복음화에 헌신하셨습니다.
할아버님은 7대독자이셨는데 5남 4녀를 출산하는 축복을 받으시고 9자녀를 둘 정도로 자손들이 많이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하는 Family Union모임을 미국, 캐나다, 케냐, 한국에서 돌아가면서 가족 50명 이상이 같이 모여 2박 3일동안 신앙도 나누고 친교하는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서로 만나 화목하게 교류하면서 저희 세대인 사촌 형제들, 저희 자녀들. 육촌 형제들 이제는 저희 손주들, 즉 할아버지의 고증손이 되는 팔촌 자손들까지 매우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팬데믹으로 중단되었던 Family Union을 2년전부터 뉴저지에서 다시 모이고 있고, 앞으로 각국에 흩어져 있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Big Family Union을 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할아버님과 외할아버님의 믿음의 유산을 본받아 자손중에서 30여명이 주의 일에 헌신하여 목사 전도사로 한국, 북한, 미국, 중국, 태국, 케냐, 코스타리카 등 온 세계 각지지에 흩어져 목회자로 선교사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 미국에서의 사회생활은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뉴욕, 뉴저지에 사는 고교 동기들과 매달 모여서 식사도 하고 운동도 같이 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특히 매년 여름 온 가족이 포코노 등지에서 2박 3일 동안 지내며 음악회도 열고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파티를 열어 자녀들과 함께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크루즈 여행도 다니면서 부부들 뿐 아니라 이제는 성인이 된 자녀들까지도 서로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대학에 간 후로는 고교 동기들이 매년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2003년부터 제가 주관하여 10일 정도 여행을 시작했는데 벌써 20년이 지났네요.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유럽, 남미, 터키, 이집트,그리고 미국 캐나다 National Park등을 여행했고 지중해, 발틱해, 알래스카 등 크루즈 여행을 같이 하며 즐거운 추억을 쌓고 있습니다. 2021년에는 팬데믹 중에도 과감히(?) 크로아티아를 다녀왔습니다. 제일 많은 동기들이 참여한 여행은 캐나다 옐로나이프 오로라 여행으로 30여명이 다녀왔는데 폭풍 7 강도의 오로라가 터져서 그 황홀했던 기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요즈음은 동기들 모임 외에도 서울고등학교 대뉴욕지구동창회 회장을 맡아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 오랫동안 인터뷰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골든 클럽에 전하고 싶은 말은?
모든 행정, 행사가 짜임새있게 진행되고 회원들간의 교류가 활발해서 모임에 참가하면서 많은 즐거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수고하여 주시는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골든클럽에 많은 발전을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