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 평양 양옥 - 참석자 홍종만, 김정필, 금영천
미국 이민 (and career):
저희가 졸업하기 3,4년 전부터 미국에 올 수 있는 문이 열렸고 특히 저희들에게 박차를 가해 주신 교수 한 분이 계셨습니다. Boston에서 소아외과 수련을 받고 오신 민병철 교수의 강의와 수술 technic, 후처리 등이 너무나 혁신적이고 눈을 뜨게 해 주어서 저의 동기 대부분이 “야 이거 미국 가서 수련을 안 받으면 안 되겠다” 고 생각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졸업 후 대학 병원에서 internship 1 년, 공군 복무 후 1965 년에 Philadelphia에 와서 internship을 또 하고 Hanover, NH의 Dartmouth Medical Center에서 외과 수련, NY의 Sloan Kettering Cancer Center 에서 ‘암 외과’ fellowship 을 마쳤습니다. NJ의 Rutgers Medical School에서 10여년 교편을 잡다가 개업을 시작했었습니다. 불행 하게도 HMO system이 시작된 때라 개업에는 아주 불리한 때였습니다. 은퇴
한지가 벌서 10 년이 훨씬 넘었네요.
의대 진학:
고교 때 몰려 다니던 친구들 대부분이 공대 지망생 들이 였고 저도 건축과를 생각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친께서 의대를 가면 어떻겠느냐고 하셔서 마음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부친은 법학 공부를 하셨는데 의사 친구분들이 많으셨습니다.
가족관계:
물론 총각으로 미국에 왔고, 저는 2,3 년은 미국 생활에 적응하느라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Residency를 한 Hanover, NH는 조그마한 college town인데 그때에는 한국 학생 단 한 명도 없었고 Dartmouth College의 maintenance dept에서 일 하신 분 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쓸쓸했지요. Boston에 동기 몇명 있었고 Hartford에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누이동생 하고는 교제 한적도 없었는데 목소리가 하도 특징이 있어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친구 한데서 간접으로 가끔 소식도 듣고. 그러다가 그 누이와 연락이 되고 결국 Hartford, Conn에 오게 되었고 결혼에까지 이르게 되었지요. 결혼식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데 제 room mate 가 일본에서 온 내과 resident였습니다. 신랑이 직접 운전 하면 안 된다고 자기가 했습니다. 그런데 rehearsal을 하고 오다가 큰 사고를 내서 신부는 앞 이빨이 부러지고 신랑은 얼굴 여러 군데가 째지고 타박상을 입고 다른 사람들도 여기 저기 다치고 했지요. 결국 식을 취소했는데 언제 또 할 생각을 하니 참 암담 했어요. 결국 한참 후에 다시 하기로 결정하고 사방에 bandage를 부치고 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그동안 큰 탈 없이 잘 살아온 것이 그때 사고가 액 땜을 해준 것 아닌가 하고 있습니다.
아들과 딸 그리고 손녀/손자, 손자/손녀 가 있습니다. 아들네는 서울에 살고 아들은 법대를 나왔는데 art dealing 계통 일을 하고 있습니다. Art fair를 주관하는 영국 회사 Frieze가 3,4 년 전에 Frieze Seoul을 설립했는데 gallery에서 일 하던 제 아들을 director로 채용해 갔습니다. 큰 손녀 와 손자는 엊그저께에 대학에 들어 간 것 같았는데 벌서 sophomore year를 마쳤습니다.
특기, 취미:
특기는 없고요. Tennis, golf, pickleball, ski 등등 A+에 가 본적 없고요, 그저 잘 해야 A minus, B plus정도였습니다. 시간을 제일 많이 허비하는 것이 golf이니 취미 하면 golf를 꼽아야 겠지요? Shot이 무궁무진 해서 늘 연구를 하게 합니다. 이젠 접을 때가 되었는 데도요.
음악, 예술 좋아하는 편이고 음악회도 많이 가는 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일 선호하는 곳이 Carnegie Hall이고 Manhattan에 처음 살았던 1974년부터 빠짐없이 매년 여러 번 가고 있습니다. Opera도 새로운 가수가 뜨면 보고요. 영화도 좋아하는데 요즈음 작품 보다는 옛날 Classic을 즐기고 (Carol Reed 감독, Hitchcock등등) MOMA에 영화 보러 갈려고 벼르기만 하고 있습니다.
일본 영화들도 얼마나 좋은 것 많습니까? 걱정은 계속 악화되는 청력입니다. NY, NJ, CT에 사시는 분들은 정말로 복받으신 분들입니다. 세계적으로 으뜸가는 Culture 가 바로 옆에 있으니. 음식은 말할 것도 없지요. 그런데 물가가 너무 올랐어요. 특히 식당.
생활신조:
특별한 것 없고요. 저는 당면한 과제를 항상 최선을 다해서 정직하고 성실 하게 풀어 나 갈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 의사 로서 새로운 지식을 습득 못해서 환자에게 그 혜택을 주지 못했다면 그런 불행이 어데 있어요? 그러니 늘 공부해야 지요. 미국 친구들 보면 (다 그렇지 않겠지만) 수련이 끝나면 무슨 큰 대가가 된 것처럼 행세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사실은 시작인데. 의업은 그만 둘때까지 계속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거든요.
후회되는 것 등:
서울대신문, 시계탑 (의대신문) 등을 보면 정말 재주 있는 분들 많아요. 존경스러워요. 저도 노력이 부족 했던 것 같아요.
건강을 지키는 방법:
움직여라, 골라 먹어라, 참석하라 가 아닌가요? 운동은 일주일에 150분 하라는 것 같은데, 불행 하게도 golf는 큰 운동은 못 되는 것 같고 결국은 weight exercise가 필요 한데, 정말 하기 싫어서 못 하고 있습니다. 좋은 gym이 일층에 있는데도. Golf는 9 hole을 걷는데, 될 수 있으면 빠른 속도로 걸으려 합니다.
Golden Club에 참가하게 된 동기:
권정덕 후배님 권유로 입회했는데 아직 까지는 겨울에 Calif에서 지내기 때문에 몫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홍종만 회장, 김정필 부회장, 편집위원 등 모두 대단한 열성을 갖고 일 하시는 것이 보입니다. Newsletter도 훌륭하고요. 이 모임의 일원이 된 것을 영광 스럽게 생각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