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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환 Kifan Park (물리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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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필
(@keiusaincgmail-com)
Member Admin
Joined: 12 months ago
Posts: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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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나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부산에서 살았다. 주로 수학과 물리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아버님의 권유로 화학을 선택하게 되었다. 경남고 졸업 후 58년도에 서울대학에 입학하여 공부하던 중 병역의 의무를 실행하게 되었다. 당시 병역은 3년이었는데, 재학시 학도병으로 가면 1년 반에 마칠 수 있어서, 군복무를 마치고 와서 졸업을 하였다. 

일본에서 공부할 생각도 있어서 일본어 학원도 다니고 했다. 그러나 나의 계획과 달리 부모님은 미국행을 반대하셨지만, 아내가 6개월 먼저 미국행을 하게 되고, 나도 뒤이어 65년도에 미국에 오게 됐다 

부인과의 만남:

나의 여동생과 아내의 동생이 부산에서 서울로 수학여행을 왔다, 서울역에 동생을 마중나갔다 기차역에서 처음 아내를 운명처럼 만나게 되었다. 아내는 당시 숙명여대(음대 피아노 전공)에 다녔다. 그 후 서로 만나고, 계속 전화하고, 그냥 몰래 뒤따라 다니고 했다. 택시를 타고 숙대 정문 앞에 와서 기다리고, 어떤 때는 또 친구하고 같이 가서 차비 없다, 차비 달라고 하고 하면서 골머리도 많이 아프게 하였다. (이상 Mrs. Pak의 회상)

가족관계:

나의 가족이라 하면 분위기가 학구적이었다고나 할까? 우선 부친부터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셨다. 

나는 6남 1녀 중 4남으로 태어났다. 형 세분이 모두 일본에서 동경제대를 다니셨다. 한 집안에서 세명이나 동경대학(동경제대)에 다닌 경우는 일본에서도 매우 드문 일이었다. 

우리 집 자녀는 2남 1녀, 큰 아들은 버클리 졸업후 증권회사에서 일하고 있고, 둘째는 NYU 졸업후 증권회사, 막내인 딸은 Columbia 졸업후 Oracle, computer technology company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인이 거의 살고 있지 않은 곳에서 주로 살았기 때문에 한인들과의 소통이 적어 자녀들이 한글을 배울 기회가 없었기에 매우  유감으로 생각한다.

미국 유학시절:

나는 미국에 와서 열심히 공부했다. St. John’s University에서 물리화학 석사와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한국 기업에서 일할 생각도 있어 시간을 할애해 MBA도 마쳤다. 

화학 연구에는 무기화학, 유기화학, 분석화학, 생화학 및 물리화학 등 5개 분야가 있다. 이 가운데 나는 물리화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나는 내가 공부한 전공에 대해서 잘 선택했다 생각한다. 앞으로 이 분야에 대해 평생 공부하면서 생활에 적용할 생각이다. 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는  Johnson and Johnson의 자회사 Ortho Pharmaceutical의 분석화학 실에서 근무하다 은퇴했고. 이후 최근 10년 가까이 어린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취미 생활:

나의 취미는 골프와 당구인데, 당구가 아주 재미있다. 400점 몇 번 쳐봤는데 예전엔 그만 못하고, 요즈음 실력이 많이 늘었다.  300점까지는 안 되고 150에서 250점 정도… 그래도 흥미가 아주 만점이다. 

생활신조:

“최선을 다하라” 이런 마음으로 성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하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 방법과 의지를 갖게 된다. 무엇을 생각할 때 옳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최정상에 오른 사람만이 할 수 있지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행동에 무엇을 하더라도 자신감이 없을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뭐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강 유지법: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고 했다. 꾸준히 규칙적인 생활과 지속적인 운동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지하 운동실에서 스팀 사우나를 30분 하고, 방에 올라와서 골프 스트라이크 근력을 키우기 위해 골프 스윙을 한 5분 정도 하며, 땀을 내는 운동을 한다. 또 항상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내지 않는 생활로 정신건강 유지에도 힘쓴다.  

아내의 내조:

미국의 봉급제도에는 박사학위자나 대학졸업자나 같은 계통의 일을 할 경우 큰 차이가 나지 않은 관계로 경제적으로는 풍요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공부만 하다 보니 물질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아내의 부친은 검사, 특검 검사 공직 생활 이후, 변호사 개업으로 명망과 부유한 가정을 이루어서 아내는 경제적 어려움을 모르고 살았다. 하지만 어려운 유학시절, 피아노 레슨으로 용돈도 보태고, 아이들 생일 케익도 직접 만들기도 하는 등 많은 고생을 하며 살림에 서포트를 하였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다. 이때의 경험으로 삶의 질을 회상하면, 물질적인 풍요보단 내 마음의 풍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골든클럽에 대한 희망:

지금까지 골든플럽은 이상적으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특별한 불평은 없고 이 모임이 영구적으로 지속되기를 바라며, 더 많은 동문들 특히 젊은 동문들의 참여가 많아졌으면 한다.

죽음에 관한 관점:

나의 삶은 시작되었고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다. 과연 나의 삶은 시작이 있었을까? 종교에서 말하는 Eternal Life도 시작이 있었을까? 나는 시작한 것은 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원한 것은 시작과 끝이 없음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너희들은 태어나서 행복하게 살다가 묻지 말고 세상 떠나라” 하는 것 같다.

[Newsletter 2024-4에서 전재]


This topic was modified 3 months ago 2 times by 김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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