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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과 스페인을 다녀와서 -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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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과 스페인을 다녀와서 - 오순문 (사대68) - 2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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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필
(@keiusain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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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ined: 1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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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Exiting이다. 여행은 나와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새로운 세상을 엿보는 another story telling이다.  사람들은 항상 일상에서의 일탈을 꿈꾸기에 집을 도망쳐 나와 산속에서 혼자 사는 ‘자연인’ 프로를 좋아한다. 모처럼 집사람과 10박11일로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여행했다. 기러기 부부로 떨어져 살 때는 일년에 두  번씩 방학때마다 여행을 했었는데 같이 사니까 오히려 팬데믹이다 뭐다 해서 소홀했던 것 같다. 26일 밤비행기로 JFK를 떠나 6시간반 동안 비행해 아침에 리스본에 도착했다. 

첫째날은 포르투갈의 숨은 보석이라는 Sintra에서  8-14세기경 번성했던 북서 아프리카 모로코 계통의 검은 이슬람 무어인(Moors)들의 페냐성을 둘러보고, 리스본 근교 수도원과 여왕의 도시 오비투스와 파티마 성당을 둘러봤다. 수도원에서 먹던 에그타겔이란 계란모양의 빵을 먹으면서 빵이란 말이 포르투칼어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회상하기도 했다.

1917년 리스본 북부 20km의 한 목장에서 성모가 세 어린이에게 나타나 세 가지 예언을 남겼다는 파티마 성당은 그 규모가 엄청 컸는데, 2005년 마지막 목격자 수녀 루치아가 선종하면서 모든 예언이 실현되었다고 한다. 마침 한국에서 온 천주교 신자들이 성모가 발현한 성지에서 큰 미사를 드리는 것을 보니 반가웠다. 포르투칼은 콜럼버스가  대륙을 발견(1492년)한 후, 이웃 스페인과 함께 대항해시대(15-16세기초)를 만끽했다. 브라질과 마카오 같은 큰 식민지들과 해상무역으로 큰 부를 누리긴 했지만,  적은 인구로 식민지를 경영하기엔 무척 어려웠다고 한다. 이웃 스페인은 3-5년이면 해외 주둔군이나 관료들을 교대해줄 수가 있었지만, 포르투갈은 한 번 해외 나가면 보통 10년-20년이 되어야 교대가 되니  가정이란 가정은 다 깨져 버렸다고 한다. 

둘째 날은 5시간반 정도 남쪽으로 드라이브를 해서  스페인의 세비아(Sevilla)에 도착해 성당과 중세도시들을 둘러 보았다. 남쪽으로 내려오는 길 창밖으로는 산악지대와 올리브 농장, 양목장들이 지나갔다. 열흘동안 4명이 대형 벤즈  SUV로 장소를 선택하면서 다니니까 샅샅이 보면서도  여유가 있었다. 이베리아 반도는 지중해성 기후로 여행 내내 좋은 날씨였지만 강우량이 적어서 나무가 적고 수종이 무척 단순했다.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초원(Pampas) 평야지역으로, 올리브나무, 포도나무, 배꽃 같은 꽃을 활짝 핀 알몬드 나무들이 있었다.

셋째 날은 콜럼버스 무덤이 있는 세비아 대성당을 방문했다. 콜럼버스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인류의 역사를 바꾼 역사적 인물이다. 이탈리아의 평민 콜럼버스가 이사벨1세 여왕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신대륙을 발견한 후 그는 전인류의 영웅이 되었고, 그후에도 스페인 상류 지배층 왕족들과 부자들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여러 차례 신대륙으로 선단을 꾸려 항해에 나섰다.  그러나 기대만큼 경제적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돈을 잃은 부자들은 콜럼버스를 비방하면서 사기꾼이라고 박대했다. 지금도 4차에 걸쳐 중남미 일대를 침탈했던 콜럼버스를 악질 노예 사냥꾼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콜럼버스는 “나는 죽으면 절대로 스페인에 묻히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 후 콜럼버스가 죽고는  시신이 후손들에 의해 서인도제도 도미니카 공화국에 묻혀졌다가,  미국과 스페인과의 전쟁(1898)에서 패전의 댓가로 필리핀과 미국 남서부를 미국에 넘길 때 콜럼버스 시신을 스페인으로 양도 받아서 안장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스페인 땅에 묻히지 않겠다는 콜럼버스의 맹세를 존중해서 당시 스페인의 네 왕이 관을 어깨에 멘채 땅에 닿지 않도록 하는 유례가 없는 무덤을 만들게 되었다. 

넷째 날, 지브롤타(Gibraltar)는 스페인 최남단에 볼록 솟아있는 맨하탄의 1/13정도 되는  작은 땅이다.  지금은 영국령이고  지중해와 대서양이 맞닿는 곳이며,  아프리카의 끝인 모로코와  빤히 보이는  곳이다(14km거리). 군사적, 상업적 요충지로 스페인이 반환을 요구하기는 하나 스페인도 똑 같은 위치에 같은 크기의 땅을 모로코로부터 반환 요청을 받고 있어 서로 묵인하고 있다고 한다. 갑자기 솟아오른 듯한 산봉우리 공원에는 야생 원숭이들이 관광객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다섯째 날은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의 마지막 부분에서 독일군을 상대로 다리를 폭파하는 장면의 무대인 론다(Ronda)다리를 방문했다.  헤밍웨이가 스페인 내전에 종군기자로 참여해 론다절벽을 요충지로 한 산악 게릴라전과 사랑을 중심으로 쓴 소설이다. 우리 세대는 바다와 노인,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등 헤밍웨이와 친근하다. 지금은 투우와 함께 론다절벽이 관광마을이 되었는데 우리는 SUV로 시골길을 따라 다리 아래까지 내려가 재미있게 절벽 위 아래 양쪽에서 볼 수 있었다. 스페인 남동쪽 지중해 연안은 온화한 날씨와 값싼 생활비로 유럽인들의 휴양, 은퇴도시로 발전했다. 

여섯째 날, 코르도바(Cordoba)는 스페인 중남부 내륙도시로  10세기경 이슬람 세력(711-1236)이 이베리아를 지배할 때 수도로 삼았던 곳이다. 오래된 유적과 전통적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1000년 전에 백내장과 녹내장 수술을 했다는 안과대학과 흑사병 방역에 공헌했다는 의사의 동상이 있는 걸 보면 의술이 매우 발달했었던 모양이다. 도서관에는 당시에 40만-100만권의 장서가 있었다고 한다. 

일곱째 날, 그라나다(Granada)는 스페인 말로 석류를 뜻하는데 산위에서 보면 활짝 필 때의 석류 모습이란다. 바다가 보이는 높은 지형에 ‘붉은 성’이라로 불리는 ‘알암브라(Alhambra) 궁전’이 있다.  멀리 보이는 만년설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끌어들여 성을 가꾸었는데, 그야말로 높은 수준의 관개기술로 목욕시설 분수 화장실 상 하수도가 발달되었다.  모로코 계통의 검은 무슬림인 무어인(Moors)들이 14세기경 그라나다에 지은 궁전으로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건축양식이 조화를 이뤘다. 아라베스크 무늬와 종유석 모양의 세밀한 양식을 가진 아치와 기둥, 돔, 소로와 수변 등은 관광객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리조트 별궁으로 쓰이던 곳들은 높은 수준의 예술성을 가진 조각과 문양들로 장식되었고, 여러 별궁에는 술탄의 네 부인과 미녀 후궁들이 기거했는데, 미인이었던 그녀들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마음에 흑심을 품었다고 해서 무조건 목을 잘랐다고 한다. 또한 목욕탕 주위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악사들은 궁녀들을 훔쳐볼까 봐 모두 눈알을 뽑아버렸다고 한다. 궁전 아래쪽으로는 오래된 집시마을이 내려다 보였다. 

여덟째 날, 17세기경 세르반테스의 동키호테 무대가 되었던 콘스에그라는 사방이 넓게 펼쳐진 농업지역이었다. 평야 한 가운데에는 작은 구릉지 산이 있는데 바람이 아주 강했고, 하얀색 풍차들이 10-15개쯤 관광용으로 남아 있었다. 산 아래 평야에서 곡식을 거둬 노새가 끄는 수레에 싣고와서는 풍차 방아간에서 곡식의 껍질을 벗긴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는 동키호테의 명대사 중 “꿈꾸는 자와 꿈꾸지 않는 자 누가 미친거요?..."란 구절이 떠오른다.

아홉째 날, 톨레도(Toledo)는 16세기까지 스페인 제국의 옛 수도로 풍부한 역사적 유물을 가진 도시다. 지금은 9만 인구의 작은 도시로 중세시대가 잘 보존되어 있었다. 톨레도 대성당에는 최후의 만찬과  천지창조에 이어 세계 3대 성화라고 일컬어지는  ‘오르가즈 백작의  매장’이 소장되어 있다.  수도 마드리드 (Madrid)에서는 동키호테 동상, 마요르광장에서는 곰의 동상을 볼 수 있었다. 

열흘째, 고속전철로 마드리드역을  출발해 2시간반만에 스페인 동북부 카탈루냐 지방을 대표하는 열정과 낭만의 도시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건축공학에 예술과 영감을 불어넣은 세계적 건축가 가우디(Antoni Gaudi)의  작품들, 초기의 자연적 색소를 가미한 사람들을 위한 건축물들과 후기의 신에게 바치는 성당 건축물[사진]에 이르기까지, 가우디의 모든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볼 수가 있었다.  몬쥬익 언덕의 영웅 황영조의 기념동상과 올림픽 공원, 바르셀로나 축구장을 둘러봤다. 

이번 11일간의 여행은 단순히 관광만 했다기보다는, 역사와 미술, 종교, 중세시대를 통째로 공부하고 온 느낌이다. 네 사람을 상대로 박식한 가이드가 밀착해서 알기쉽게 설명해주고, 재미있게 듣다보니 바로크 양식, 고딕, 인상파 등 자세히 몰랐던 것들까지 체계적으로 많이 알게 되었다. 물론 나는 한쪽 귀로 대충 이해하고는 바로 잊어버리긴 했지만, “세상은 넓고 볼 것도 참 많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This topic was modified 3 months ago by 김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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