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을 가족 여행
이번에 짧은 기간이지만 스위츠랜드와 이태리를 가족과 함께 다녀왔다. 특별히 작은 딸(Nancy, David-사위)의 시부모와 같이 동행을 하여 그 뜻이 더욱 깊었다. 사돈은 Arizona 에서 우리와 합류하기 위하여 NJ 로 와서 같이 출발하였고, 돌아올 때도 역시 우리 집으로 함께 와서 이틀을 더 머문 후에 떠났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명승지를 답사 탐방하는 것 보다는 그 동안에 쌓인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해소하기 위한, 즉 ‘쉼’을 위한 것이 맞는 표현이다.
첫 도착지는 Zurich, Switzerland 였다. 우리가 보통 스위스(Swiss) 라고 부르는데 실은 나라 이름은 Switzerland 이고 Swiss는 일종의 Brand name이다. Swiss chocolate, Swiss wine, Swiss peaple 등으로 호칭하며 나라 이름은 Switzerland 라고 칭하는 것이 맞다.
호텔(Mandarin Oriental Palace) 방에서 내려다 보이는 루체른 호수(Lake Lucerne)는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1798년 루체른은 스위스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혁명 전쟁과 그에 따른 헬베티아 공화국의 창설로 큰 영향을 받았다.
이 기간 동안 프랑스 혁명군은 스위스를 침공하여 구 스위스 연방을 전복했다. 스위스 중부의 주요 도시인 루체른은 스위스 연방의 일부였기 때문에 이러한 사건에 연루되었다. 프랑스는 이전에 상당한 자치권을 누렸던 느슨하게 연결된 칸톤을 대체하여 스위스에 중앙 집권적이고 통일된 국가를 수립하고자 했다.
1798년 4월 프랑스의 침공 이후 헬베티아 공화국이 선포되었고 루체른은 주요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새로운 정부는 프랑스 공화국을 모델로 한 중앙집권 국가였으며, 이는 스위스의 정치적 지형을 크게 바꾸었다. 칸톤의 전통적인 권력은 크게 약화되었고 많은 지역 기관이 해체되었다.
이 기간은 정치적 불안정, 경제적 어려움, 새로운 정권에 반대하는 일부 주민의 저항으로 특징지어졌다. 중앙집권화된 헬베티아 공화국은 내부 갈등과 외부 압력에 직면하면서 수명이 짧았고, 1803년 붕괴로 이어졌고, 그 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발표한 중재법에 따라 스위스 연방이 복원되었다.
1798년 루체른의 경험은 국가가 옛 연방 체제에서 프랑스의 영향 하에 보다 중앙집권화된 형태의 정부로 전환하면서 스위스 전역에서 일어난 더 광범위한 격변으로 이어졌다.
[제한된 지면관계 여러 곳을 소개하지 못하고 다소의 사진으로 대체함을 양해 바랍니다.]
[이태리]
Switzerland 에서 이태리로는 자동차 두 대로 이동했는데 중간에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는데 여권을 보자던가 검색 절차도 없이 그냥 통과했다. 중간 지점 호텔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Lake Como(Lago di Como) 호수 가에 있는 역시 Mandarin Oriental Como Hotel, 에 여장을 풀었다.
**Lago di Como**라고 불리는 코모 호수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호수 중 하나로, 수천 년의 풍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코모 호수 주변 지역은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로마 정복 이전에 켈트족이 살았다고 한다.
로마 시대에 코모 호수(당시 **Larius Lacus**라고 불림)는 호숫가를 따라 호화로운 빌라를 지은 부유한 로마인들에게 인기 있는 휴양지가 되었다. 로마 작가이자 정치가인 플리니우스 더 영거는 이 호수에 두 개의 빌라를 소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이 지역은 롬바르드족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코모 호수의 전략적 위치 덕분에 다양한 요새와 성이 생겨났으며, 그 중 일부는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중세시대에 이 지역은 여러 지방 영주들에게 분할되었고, 신성 로마 제국과 이탈리아 지방 국가들 간의 더 큰 갈등의 일부가 되었다. 호수 주변의 마을들은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 호수는 귀족과 부유층을 계속 끌어들여 웅장한 빌라를 지었는데, 그 중 많은 빌라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빌라 데스테와 빌라 카를로타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지역은 나폴레옹 전쟁의 영향을 받았지만 유럽 엘리트들에게 인기 있는 휴양지로 남아 있다. 19세기에 코모 호수는 특히 영국 귀족들에게 주요 관광지가 되었고 호수의 아름다움과 온화한 기후가 어우러져 예술가, 작가, 음악가들에게 인기 있는 목적지가 되었다. 20세기 내내 코모 호수는 계속해서 인기를 얻어 유명인과 고위 인사들의 휴양지가 되었고, 럭셔리 여행지로서의 명성을 더욱 공고히 했다.
오늘날 코모 호수는 아름다운 풍경, 역사적인 빌라, 부자와 유명인의 놀이터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관광, 영화, 패션의 인기있는 장소로 계속 자리잡고 있으며,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인기있는 여행지 중 하나로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잊지 못할 생일 파티:
여기 와서야 이번에 딸들이 왜 우리 부부와 가족 전체 그리고 사돈 내외까지 이 곳으로 초청을 했나 하는 의문 점이 풀렸다. 다름 아닌 이날 저녁의 호텔에서의 ‘Summer Gala La Dolce Vita’ 라는 1년에 한번 있는 축제의 밤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1년 전부터 예약을 해야 겨우 참가할 수 있다고 하며, 마지막 크라이막스는 엄청난 규모의 호수 상의 불꽃놀이였다. 참으로 경이로운 풍경이었고 파티 내내 이태리 가곡을 남, 여 가수 1명이 번갈아 부르고 춤도 추는 경우가 많았다. 이태리 가곡 중에는 1950년대 대학재학중 가끔 들렸던 음악감상실에서 듣던 귀에 익은 곡들이 있어 옛 추억에 빠져들기도 했다. 참으로 잊지못할 황홀한 밤의 축제였다.
내 생일이 8월, “이 것이 내 생일파티였구나!” (새일 케익은 돌아와서 간단히 잘랐지만..)
다음날은 Milan 으로 이동했다. 처음으로 그 유명한 대 성당을 안내원의 안내로 관람했다.
일반적으로 두오모로 알려진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건축은 건축가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설계로 1296년에 시작되었지만, 그 구조물은 1436년(140년)에야 완성되었다. 르네상스 건축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이다.
공학의 경이로움인 대성당의 돔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건설된 가장 큰 벽돌 돔으로 남아있다. 이중 껍질과 헤링본 벽돌 패턴의 사용과 같은 브루넬레스키의 혁신적인 기술은 당시 획기적인 기계 없이도 거대한 돔을 지을 수 있게 했다.
두오모의 외관은 흰색, 녹색, 분홍색 대리석의 멋진 혼합으로 덮여 있어 시각적으로 눈에 띄는 외관을 연출한다. 내부는 외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엄격하며, 구조물의 웅장함을 강조한다.
대성당은 지오토의 종탑(종탑)과 성 세례당을 포함한 더 큰 단지의 일부이다. 이 구조들은 르네상스 시대에 피렌체의 종교적, 정치적 힘을 나타낸다.
** 이번 여행에서 두 국가에서 특이한 점:
- 양 국가 공히 고산 지대에 놓여 있다.
- 고산 지대인데도 호수가 많았다.
- 관광버스 이외에는 일반 대중버스는 거의 보지 못했고 전차가 대중교통 수단인 것처럼 보였다.
- 터널이 많았다. 참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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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도시 |
Switzerlamd |
Italy |
NY Ci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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턴넬 수 |
1,300 개 |
1,000 개 |
10 여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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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긴 턴넬 이름 |
Gotthard Tunnel |
Brener Base Tunnel |
Lincoln Tunn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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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이 |
57.1 KM=35.5 miles (세계 최장) |
55 KM= 34 miles (세계 2 위) |
2.4 KM = 1.5 mil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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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통하는 곳 |
Switzerlandß> Northern/Southern Europe |
Italy ß> Austria |
NYCß> NJ |
끝.